의상대의 존재등은 7세기의 사실을 말하고 있어, 7세기 왜적의 방어에 대비한 소규모시설로 창건되었다가 흥덕왕대 본격적인 가람구성을 갖추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범어사는 왜구를 견제하기 위한 진호사찰(鎭護寺刹) 겸 화엄대찰로 창건되어 국가의 거찰로 중요시되어 오다가 임진왜란에 완전히 불
범어로‘마이트레야’(Maitreya, 자비로운 어머니)이며, 마이트레야는 미트라(Mitra)에서 유래되었다. 미트라는 인도, 페르시아 등지에서 섬기던 고대의 태양신이다. 또 기독교의 메시아(Messiah)도 미트라에서 유래되었다. 즉 불교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분으로 수 천 년 동안 고대해왔던‘미륵부처님’과 기
➃ 화명동 고분군
부산시 북구 화명동 일대 이곳에 옛 무덤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도굴꾼들에 의해 파헤쳐진 묘소의 부장품 조각들을 보고 알 수 있었으나 학계에서는 1972년에 정식으로 발굴 조사하였다. 고분은 동산의 능선을 타고 군집하여 있었는데 산의 능선에 무덤을 안치하는 것이 가야
중문탑금당강당이 중심축 위에 배치되고, 중문 좌우로 펼쳐진 회랑이 당탑(堂塔)을 둘러싸고 또 강당으로 연결시킨 1탑 1금당식이 특징이다. 신라 역시 백제의 영향으로 1탑 1금당식의 가람이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는 불국사 다보탑 등 뛰어난 건조물이 많은 불교건축의 황금기로 경주
Ⅰ. 개요
지금까지 사찰관광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지리학적 차원에서의 사찰관광의 공간구성이나 지리적 분포와 유형의 열거에 그치고 있고, 사찰관광에 대한 이미지나 관광으로 인한 부대적인 영향을 검토하는 선에 머물고 있다. 사찰과 관련한 기존의 연구들은 대체로 사찰이 가지고 있는 관광자
(7)고려시대의 부산
고려시대의 부산에 관한 기록인『고려사』지리지에는, "동래현은 본래 신라의 거칠산군으로 경덕왕이 동래군으로 고쳤는데, 현종 9년 울주에 내속되었고, 뒤에 현령을 두었다. 온천이 있다"라 하였고, 또한 "동평현은 본래 신라의 대증현이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쳐 동래
사찰이다.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서 영남 불교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다. 범어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인 신라 문무왕 18년(678)년에 의상(義湘) 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 중의 하나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호국사찰이기도 하다.
범어사는 오랜 역사와 함께 수많
신라 문무왕 16년)왕명에 의해 의상 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부석사가 위치한 곳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라 하여 양백지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산지가람의 배치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수미산(須彌山)을 의미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부석사 역시 수미산을 의미 중심으로 구축된 듯하다. 수미산은
신라에 병합되어 내이군․급벌산군은 그대로 유지되고, 기목진(基木鎭 : 지금의 풍기읍)이 새로 설치되었다.
500년(소지마립간 22) 왕이 이 곳에 행차해 벽화(碧花)와의 전설을 남기기도 했고, 676년(문무왕 16)에는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아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
의상(625~702) : 최고 신분인 진골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당시에 불교 대중화는 신분을 초월하여 하나의 대세를 이루었고, 의상 도 그 흐름을 따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각 각 미륵불과 아미타불로 성불했